읽을거리
우리가 빌런에게 끌리는 이유: 일상의 작은 악의에 대하여
이야기 속 악당은 늘 주인공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My Villain Index」를 만들며 붙잡고 있던 생각, 곧 거창한 악보다 사소한 앙심이 우리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쪽은 대개 악당이다
이야기를 오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비대칭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인공은 대개 무언가에 반응하는 사람이고, 악당은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왕좌를 원하고, 복수를 원하고, 세상이 뒤집히는 광경을 원합니다. 욕망이 먼저 있고 행동이 뒤따르니 서사의 엔진은 자연스럽게 악당 쪽에 달립니다. 우리가 악당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오래 사랑받은 악당들을 늘어놓아 보면 몇 가지 원형이 반복됩니다. 부당하게 짓밟힌 기억을 품고 돌아오는 복수자, 더 높은 자리를 향해 곧게 올라가는 야심가, 계획도 목적도 없이 판을 흔드는 혼돈의 광대, 그리고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그림자 속에서 판을 짜는 책략가. 동기가 상처인지 야망인지, 방식이 즉흥인지 계산인지에 따라 같은 악행도 전혀 다른 얼굴이 됩니다.
「My Villain Index」의 결과 화면에는 유형마다 닮은 캐릭터를 몇 명씩 적어 두었습니다. 라이온킹의 스카, 어벤져스의 타노스, 엑스맨의 매그니토 같은 이름들입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면 악당이 단순히 ‘나쁜 사람’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과 크기를 보여 주는 하나의 지도라는 걸 알게 됩니다.
기원 서사, 악당에게 과거를 허락하는 일
악당의 과거를 따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말을 듣고,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기원 서사가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악당을 용서해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거리까지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악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사람을 안심시키고, 동시에 조금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테스트의 첫 질문도 기원에서 출발합니다. “당신이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선택지는 셋입니다. 「누군가 나를 짓밟았다」, 「더 큰 힘을 원했다」, 그리고 「그냥, 그게 재밌으니까」. 상처, 야망, 순수한 재미. 사람들이 이야기 속 악당에게 부여해 온 동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 온 셋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흑화’의 모습을 묻습니다. 여기에 저희가 가장 아끼는 선택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소한 앙심에서 시작됐다」. 설명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분함이 나를 조금씩 비틀어 놓았다.’ 거대한 비극보다 이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만드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서운함은 어떻게 자라는가
일상의 악의는 대개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줄 서 있는 내 앞으로 누군가 태연하게 끼어드는 순간, 단체 대화방에 올린 말에만 아무 반응이 없는 저녁, 나 없이 찍힌 모임 사진이 뒤늦게 올라오는 날. 어느 것도 누군가를 미워할 만큼 큰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일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된다는 데 있습니다.
결과 중 「삐친 장난꾸러기」의 일상 묘사는 이 과정을 거의 그대로 그립니다. 단톡방에서 누가 내 말을 툭 자르고 지나가도 그 자리에서는 따지지 않고, 그날 저녁 내내 그 장면을 되감다가, 다음 날 부탁받은 사소한 일 하나를 ‘깜빡’ 빠뜨립니다.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풀립니다. 대단한 악행은 아니지만, 분명히 작은 앙갚음입니다.
같은 서운함도 사람마다 다른 모양으로 자랍니다. 「뒤끝 장부지기」는 화를 내는 대신 메시지를 정리하고 날짜를 확인해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한 번 꺼냅니다. 「관심종자 그렘린」은 조용해진 자리에서 오히려 먼저 판을 벌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사소한 서운함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세 개의 축, 여덟 명의 악당, 스물네 개의 결말
테스트의 뼈대는 세 개의 축입니다. 악의 동기가 원한인가 야망인가, 방식이 혼돈인가 책략인가, 그리고 노리는 판이 눈앞의 한 사람인가 세계 전체인가. 이 셋을 조합하면 여덟 가지 원형이 나옵니다. 원한과 혼돈과 작은 판이 만나면 「삐친 장난꾸러기」가 되고, 야망과 책략과 거대한 판이 만나면 「세계 종결자」가 됩니다. 그 사이에 「쩨쩨한 폭군」, 「복수의 방화범」, 「상처받은 마스터마인드」, 「미친 아나키스트」가 자리합니다.
본 질문 여섯 개는 모두 악당의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은 노리는 판의 크기를 묻고, 선택지는 「당장, 눈앞의 한 사람」부터 「인내 끝의 세계 그 자체」까지 벌어집니다. 일상의 말투로 뒤끝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하겠지요. 악당의 가면을 한 겹 씌워 주면 오히려 솔직한 대답이 나옵니다. 이야기라는 안전한 거리가 있어야 사람은 자기 안의 앙심을 편하게 꺼내 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질문은 서게 될 자리를 묻습니다. 「누군가의 오른팔로」, 「그림자 속 설계자로」, 「단독의 복수자로」. 같은 원형이라도 누구 곁에 서는지, 혼자 서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원형마다 세 가지 변주를 두었고, 그래서 결과는 모두 스물네 개가 됩니다.
빌런 지수는 판결이 아니다
결과마다 붙는 빌런 지수는 1%부터 99% 사이의 숫자로 나옵니다. 가장 낮은 쪽에는 누군가의 뒤에서 골탕을 준비하는 「삐친 장난꾸러기」가 6%로, 가장 높은 쪽에는 우주의 질서를 다시 쓰겠다는 「세계 종결자」의 설계자 변주가 99%로 놓여 있습니다. 이 숫자가 재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가 아니라, 당신이 고른 이야기가 얼마나 큰 무대를 원하는가입니다.
그래서 모든 결과에는 악당 설명과 함께 일상의 모습과 조언이 붙어 있습니다. 「삐친 장난꾸러기」의 조언은 서운함이 사실 이 관계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함정 대신 ‘아까 그 말, 나 사실 조금 서운했어.’라는 한 문장을 건네 보라고 권합니다. 「쩨쩨한 폭군」의 일상 묘사는 결국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악당의 이름 아래에는 거의 언제나,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될 장점이 숨어 있습니다.
이 테스트는 진단이 아니고, 결과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도구도 아닙니다. 저희가 바란 것은 그보다 작은 일입니다. 새치기한 사람의 뒤통수를 한참 노려보았던 날, 대화방의 침묵을 오래 곱씹었던 밤을 조금 웃으면서 돌아보는 것. 마음속의 작은 악당에게 이름을 붙여 주면, 그 악당은 생각보다 덜 무섭고 훨씬 사람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