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우리 안의 원시인: 본능이라는 농담을 진지하게 읽기
과자 서랍을 채우고 모닥불 영상을 틀어 두는 우리를 두고 “아직 원시인이라서 그렇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My Caveman DNA」를 만들며 이 농담을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부터 놀이로 남겨 둘지 고민한 기록입니다.
과자 서랍과 모닥불 영상
장을 보고 오면 이상하게 과자 서랍부터 채우게 됩니다. 당장 먹을 것도 아닌데 비어 있으면 불안하고, 가득 차 있으면 마음이 놓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흔히 “몸은 아직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 살고 있어서”라고 설명합니다. 배가 고프면 말투부터 날카로워지는 것도, 단체 대화방에서 나만 빠진 약속을 발견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도 같은 계열의 농담으로 묶입니다.
모닥불도 빠지지 않습니다. 캠핑장에서 불꽃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사라지고, 그 느낌이 아쉬워 집에서 장작 타는 영상을 틀어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멍’이라는 말이 따로 생긴 것만 봐도 꽤 흔한 경험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안의 원시인이 좋아해서 그래”라는 한마디는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농담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주고, 동시에 책임을 조금 덜어 줍니다. 야식을 먹은 건 내가 아니라 수만 년 묵은 배고픔이라는 식이죠. 게다가 누구에게나 해당되니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습니다. 「My Caveman DNA」는 이 친근한 농담에서 출발했습니다.
농담이 과학의 옷을 입을 때
다만 만드는 입장에서 먼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원시인 본능” 이야기의 상당수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실제 학문에서 개념을 빌려 오지만, 인터넷에 도는 형태는 대개 그 학문의 결론이 아니라 한 줄짜리 요약입니다. 과자를 쟁이는 습관이 정말 먹을 것이 귀하던 환경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할인 행사와 포장 단위와 어릴 적 집안 분위기가 만든 버릇인지, 한 사람의 행동만 보고 가려낼 방법은 없습니다.
먼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남은 흔적으로 조심스럽게 추론할 수밖에 없고, 그 추론 위에 오늘의 버릇을 하나씩 짝지어 주는 건 한 번 더 건너뛰는 일입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는 쉽게 만들어지지만, 그럴듯하다는 것과 사실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설명이 타당한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분야라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래서 이 테스트는 처음부터 과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전자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당신이 어떤 조상을 두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결과 화면의 숫자는 몇 가지 선택을 이야기에 맞춰 환산한 값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아야 오히려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간식 대신 새벽 두 시를 묻다
재미있는 건, 막상 문항을 쓰기 시작하자 과자나 불멍 같은 소재는 거의 쓰지 않게 됐다는 점입니다. “간식을 쟁여 두나요?” 같은 질문은 답이 너무 뻔하고, 그 답이 사람에 대해 알려 주는 것도 적었습니다. 대신 짧은 장면 하나를 던지고, 그 안에서 무엇을 먼저 하는지 묻는 쪽을 택했습니다.
첫 문항은 이렇습니다. “새벽 두 시. 현관문 밖에서 뭔가 부스럭거렸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선택지는 불을 끄고 귀를 기울이기, 문을 열고 확인하기, 늘 나던 소리라며 다시 눕기, 옆 사람을 깨워 같이 듣기입니다. 이삿짐 트럭이 꽉 찬 상황에서 노트북, 잠든 아이, 공구함, 동네를 아는 이웃의 연락처 중 하나만 들 수 있다는 문항도 있고, 조건이 훨씬 좋다는 곳의 소문이 도는데 실제로 가 본 사람은 없다는 문항도 있습니다.
무대는 모두 현대입니다. 동굴도 매머드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위험을 알아채는 감각,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판단, 낯선 무리 앞에서의 태도, 틀어진 계획을 놓아주는 능력처럼 원시인 농담이 은근히 가리키던 것들을 오늘의 장면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여덟 개의 장면이 본능·판단력·감각·적응력·신체·무리라는 여섯 갈래를 나눠 맡고, 부족 안에서 당신이 사냥꾼, 채집꾼, 불지기 가운데 어느 자리에 가까운지는 따로 묻지 않고 그 여섯 갈래의 점수가 기운 방향에서 읽어 냅니다.
멋있어 보이는 답이 점수를 깎는 이유
이런 테스트를 하다 보면 누구나 “원시인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싶은 답을 고르고 싶어집니다. 밤길에 뒤따라오는 발소리를 듣고 돌아서서 소리치기, 팀에 남은 예산을 지금 다 쓰고 새로 벌어 오기 같은 답입니다. 이 테스트에는 그런 선택을 조용히 세어 두는 숨은 값이 있습니다. 저희는 무모함이라고 부르는데, 멋있어 보이는 답을 연달아 고르면 수치가 오히려 조금씩 깎입니다.
반대쪽 함정도 있습니다. 매번 가장 신중한 답만 고르면 고집이라는 값이 올라갑니다. 몇 주 준비한 계획이 엎어졌는데도 원래 계획대로 다시 기다리기만 하는 식이죠.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 용감함이나 조심성 중 하나가 아니라, 때에 맞게 둘을 오가는 감각이라는 것이 이 설계의 생각입니다.
신체 항목의 비중을 일부러 낮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원시인이라고 하면 근육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이 테스트는 체력이 생각보다 덜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여섯 갈래 중 하나가 바닥까지 내려가면 나머지가 아무리 좋아도 전체가 함께 깎이고, 두 가지 강점이 나란히 높을 때에만 서로를 끌어올리도록 했습니다. 위협을 보고도 얼지 않으려면 감각과 본능이 둘 다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속 논리를 숫자로 옮긴 것입니다.
1%에서 99%까지, 그리고 스물네 개의 이름
결과는 1%부터 99%까지의 원시인 DNA 수치와 여덟 개의 등급으로 나옵니다. 가장 위는 완전한 원시인, 그 아래로 깨어 있는 야생, 단련된 사냥꾼, 쓸 만한 부족원, 반반의 피, 길든 사람, 희미해진 본능이 이어지고, 가장 아래는 완전한 현대인입니다. 여기에 점수의 결에서 읽어 낸 사냥꾼·채집꾼·불지기가 겹쳐 모두 스물네 가지 결과가 됩니다.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양 끝의 균형이었습니다. 가능한 응답 조합을 전부 계산해 보면 완전한 원시인과 완전한 현대인은 각각 3%가 채 안 되는, 거의 같은 비율로 나옵니다. 원시인에 가까울수록 우월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현대인의 결과에는 “막히는 게 있으면 1초 만에 검색창부터 켬”, “계단이 보여도 무조건 엘리베이터” 같은 장면이 적혀 있는데, 이건 흉이 아니라 지붕과 지도 앱이 있는 세상에 잘 맞춰 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완전한 원시인 가운데 불지기의 결과에는 “알람을 꺼놔도 해만 뜨면 눈이 떠짐” 같은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나오든 그 문장들 가운데 한두 개쯤은 친구가 “이거 완전 너잖아”라고 할 만한 것이길 바랐습니다. 결국 이 테스트가 하려는 일은 판정이 아니라 대화의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농담으로 남겨 두는 이유
원시인 농담의 좋은 점은 우리를 조금 너그럽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새벽의 작은 소리에 잠이 깨는 것, 단체 사진에서 내 자리가 어디인지 신경 쓰이는 것, 배고플 때 괜히 말이 짧아지는 것을 결함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 정도로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 너그러움은 설명이 사실이든 아니든 쓸모가 있습니다.
다만 그 농담이 “원래 본능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되거나 누군가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는 순간, 재미는 사라집니다. 「My Caveman DNA」가 숫자와 등급을 내놓으면서도 끝까지 놀이라는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99%가 나와도 동굴로 돌아갈 필요는 없고, 1%가 나와도 무언가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밤 과자 서랍을 채우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입니다.